
안녕하세요. 세계장신구박물관 관장입니다.여러분 앞에 인사드리려니 지난 30년의 온갖 사연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납니다.
1971년 브라질에서 시작하여 2002년 아르헨티나 대사로 마감할 때 까지 30여년을 외교관의 아내로 세계 아홉 곳에서 외지생활을 했습니다.
2-3년 씩 살았던 곳, 모두 각별하지만 1978년 처음 대면한 아프리카대륙에서 저는 장신구의 세계에 입문하는 큰 변화를 갖게 됐습니다.
그때부터 어디를 가던 장신구를 향한 사랑과 열정이 늘 함께 했고 그 사랑이 깊어가는 만큼 제 곁에 머무는 장신구의 양도 늘어났습니다.
알고 보니 장신구는 가장 오래된 인류의 벗이었습니다. 수렵생활시절부터 동물의 이빨이나 뼈, 가죽, 털 등을 활용해서 장신구로 썼으니까요.
아름다워지기 위해서 생로병사의 매듭을 지으며 기댔던 정신적 위안의 수단으로, 특정 종족이나 신분을 말해주는 신분증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비상시에 내다팔 수 있는 가내은행의 대역으로 장신구는 만들어지고 쓰였습니다.
세계 어느 곳에 살던 우리는 모두 스스로 이 장신구의 노예가 된 것이지요. 당연히 많은 장인들이 예술 혼을 불사르는 대상으로 장신구를 택했습니다.
쓰이는 재료도 상아부터 금, 은, 보석에 이르기 까지 다양했고 그 속에 담긴 디자인도 어느 예술작품보다 독특해서 착용자나 바라보는 이 모두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더욱이 다른 예술품과는 달리 장신구는 만든 사람과 착용했던 사람의 혼이 녹아있어서 바라보는 가슴에 멍자국 같은 것이 남습니다. 장신구가 던지는 미(美)의 불도장 때문이지요.
더 나아가 장신구는 현실과 전설이 뒤엉킨 아스라한 몽환의 세계로까지 데려갑니다.
그래서인지 가끔 장신구와 착용자의 중간계 (中間界)에 서있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긴 세월을 품고 있는 오래된 장신구는 먼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보고 그리고 냄새로 보다가 마지막에는 가슴에서 울리는 진동으로 교감해야 합니다.
그러면 가장 오래된 것이 가장 새로운 것, 오래된 것 일수록 가장 현대적 의미를 갖는다는 Shakespeare의 말을 이 박물관에서 퍼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 돌아가신 디자이너 앙드레 김 선생님을 비롯해서, 작곡가 노영심씨, 탵런트 이태란씨 등 많은 문화예술인들도 세계장신구박물관을 무척 사랑해 주십니다.
세계의 문화를 접하며 살 수 있었던 혜택을 받은 제가 가슴깊이 간직해 왔던 것이 있습니다. 문화는 어느 특정인의 소유가 아니고 대중과 공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박물관 설립 의지도 이렇듯 자연스럽게 형성되었고 그 과정에서나 박물관 운영에 있어서 지금도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지만 저와 함께 장신구의 세계의 풍덩 빠지는 관람객
층이 두터워지는 한, 저는 가장 행복한 박물관인으로서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세계장신구박물관 관장
이강원
이강원(李康媛)은 외교관 (김승영 전 주아르헨티나 대사)과 결혼, 1971년 남미 브라질에서 시작, 독일, 에티오피아, 미국, 자메이카, 코스타리카, 콜롬비아를 거쳐 2002년 아르헨티나에서 외교관 아내의 날개를 접을 때까지 30여년의 외지 생활을 했다.
세계 어디에서도 생활의 텐트를 세우고 살아야 했던 신 유목민생활의 낙수인 메모!
그 날개짓은 3개의 시집 <외지의 휘파람소리> (1995), <카멜레온의 눈물> (1996), <행복케익 레시피>(2000) 와 두 권의 에세이 <세상을 수청드는 여자>(1998), <탱고와 게릴라> (2002), >장신구로 말하는 여자<(2017)가 되었다.가 되었다.
그중 시집 2개는 스페인어로 번역, 지금도 남미인의 가슴에서 한국정서의 푸닥거리를 하고 있다.
아시아 문인으로는 최초로 아르헨티나 작가협회 (SADE) 정회원이 되기도 했고, 1999년 6월 메데진 (콜롬비아)국제시인 페스티발 한국대표, 2000년 3월 아바나(쿠바)국제예술제 한국대표로 참가했다.
60대 중반인 2010년에는 르네상스 미술을 공부하기 위해 벨기에와 영국으로 홀로 유학을 다녀와 또 다른 막을 열었다.
2016년 5월 박물관인으로는 최고상인 대통령표창을, 12월에는 서울시 문화상을 수상했다.
주요 일간지의 칼럼니스트로, SBS라디오 “이숙영의 파워 FM”, KBS라디오 “손미나의 여행노트” 등 프로그램의 고정 패널로도 활동하며 알랑 드 보통이 세운 ‘인생학교’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세계장신구박물관장, 한국박물관협회이사,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이사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