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탄생의 진원지인 아프리카에는 53개국, 700개의 다른 언어를 쓰는 7억의 인구, 1300여개의 문화권과 2500개의 부족이 있다. 문자를 갖고 있지 않은 그들에게 장신구는 훌륭한 문화언어였다. 장신구는 장식의 욕구를 뛰어넘어 제2의 살갗, 정신의 부적과도 같아서 그 열정이나 집착이 어느 곳 보다 강하다. 그들은 주위의 어느 것도 장신구로 바꿀 줄 아는 끝없는 상상력과 천재적인 재주를 지냈다. 일찍이 짐승의 뼈와 가죽, 깃털, 나무, 뿌리, 씨, 조개 같은 유기물을 장신구로 재탄생시키는 지혜를 터득했고 뒤이어 발달된 금속공예 기술은 더 다양한 재료사용이 가능해졌다. 당연히 아프리카 장신구의 스펙트럼도 아주 넓어졌다. 특히 대륙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는 유목민들의 장신구는 그 디자인이나 세공술이 뛰어났는데 그중에도 서북부의 베르베르 족과 동북부의 라샤이족의 장신구는 장신구사에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19세기에 융성했던 서부 가나의 아샨테 왕국은 금 장신구를 많이 만들었고 동북부에 있는 에티오피아에는 은의 명장들이 많았다.
특히 그곳의 은 십자가는 종교적 믿음의 아름다움을 가장 표현한 장신구로 전 세계에 마니아층이 두텁다.

또 주목할 곳은 베닌 왕국이다.13세기부터 18세기까지 정치, 경제적으로 융성했던 이곳에서는 청동을 다루는 기술이 발달하여 정교한 청동장신구들을 많이 제작했다. 모로코 여인의 호박 결혼 목걸이에서 케냐의 마사이 족의 정교한 비즈 장신구에 이르기까지 아프리카 장신구는 그들의 놀라운 예술성과 창의성을 증언하고 있다.

기원전 4000년경의 장신구들이 영국과 불가리아 등지의 무덤에서 발굴됐지만 남아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고, 기원전 3000년경 지중해에서 꽃피웠던 미노아문명의 황금장신구는 그 정교함이 무척 뛰어났다.
19세기와 20세기에 프랑스와 벨기에에서 시작해 유렵 전역에서 꽃 피웠던 아르누보와 아르데코 장신구들은 오늘 날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오늘날의 장신구는 사회를 반영하는 본래의 역할을 뛰어넘어 새로운 예술분야를 창조하는 존재로 그 역할이 확장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정치적, 경제적 그리고 문화적 혼란기는 예술가들이 전통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아트의 경계에 대한 의문을 제기함으로서 대변혁을 가져왔던 시기였다.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의 장신구 작가들은 장신구에 대한 혁신적인 이론과 제작방법으로 우리에게 장신구에 대한 고정관념에 대해 도전장을 던졌다. 이 같은 새로운 부류의 작가들은 그들의 시각적 예술세계를 변형시키기 위한 지속적인 시도를 하였고 다양한 재료의 활용, 스튜디오 제작 및 인체에 대한 새로운 재발견 과정을 통해 그들의 작품이 보다 폭넓은 평가를 받고자 했다. 1960년대 말 이후로 이와 같은 장신구에 대한 혁명적인 개념들은 세계 곳곳으로 번져나갔다.

역사와 언어, 문화가 상이한 아시아에서는 전통 장신구도 나름대로 독특한 개성을 보이고 있다.

중국에서는 기원전 5000년경 신석기 시대의 것들이 발견되는데 비취와 옥으로 만든 것이 많다. 특히 남서지역에 거주하는 소수민족들이 만든 은 장신구는 그 대담한 디자인과 테크닉에서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묘(苗)족은 머리부터 발까지 신체에 모든 부분에 은 장신구를 절묘하게 활용했다.
마치 초현대 회화를 응결시켜 놓은 듯한 대담한 크기나 디자인에는 놀람을 금할 수 없다.
축제 때는 50종이 넘는 장신구로 온몸을 치장하는데 그 무게는 10kg이 넘는다.
히말리야 고원에 위치한 티베트, 네팔, 라다크의 세공사들은 금속과 준보석을 대담하게 다루었는데 터키석과 산호, 호박 등에 깊은 애정을 가졌다. 물, 하늘, 공기를 상징하는 파란 터키석은 악의 힘을 물리치고 용맹스럽게 하는 힘이 있다고 믿었고 빨간 산호는 피와 생명을 불러와 여성에게는 힘과 행복을 가져오고 월경을 쉽게 해준다고 믿었다.

고대로부터 인도는 섬유, 염료, 향신료를 취급하는 교역의 중심지였다.

메소포타미아, 아프리카, 중동, 로마, 유럽 각지에서 온 상인들이 지불한 은화로 수많은 장신구를 만들었다. 특히 무갈왕국 (1526-1761)의 화려한 금과 유색보석의 장신구는 거미줄에 비유할 정도로 놀라운 정교함을 보여준다.

또 북부 라자스탄의 왕들은 대단한 심미안을 갖고 있어서 자신이 사용할 목걸이와 터번위에 붙일 브로치 등을 가장 뛰어난 세공사에게 주문해서 착용했다. 지금도 세계에서 장신구를 가장 사랑하는 여인은 인도 여인들이다. 인도의 금 소비량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앙 아시아의 투르크메니스탄과 이란에 흩어져 살고 있는 투르쿠만인들이 사용한 장신구도 그 빼어난 아름다움이 널리 알려졌는데 은과 악귀를 물리쳐 준다고 믿었던 홍옥수를 많이 사용했다. 정교하고 대담한 디자인과 세련된 세공술은 부적케이스, 가슴 장신구, 핸드백, 머리장식구 등에서 특히 빛난다.

역사와 언어, 문화가 상이한 아시아에서는 전통 장신구도 나름대로 독특한 개성을 보이고 있다.

중앙 아시아의 투르크메니스탄과 이란에 흩어져 살고 있는 투르쿠만인들이 사용한 장신구도 그 빼어난 아름다움이 널리 알려졌는데 은과 악귀를 물리쳐 준다고 믿었던 홍옥수를 많이 사용했다. 정교하고 대담한 디자인과 세련된 세공술은 부적케이스, 가슴 장신구, 핸드백, 머리장식구 등에서 특히 빛난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많은 종족이 여러 섬에 흩어져 살고 있어서 각기 독특한 특성을 갖고 있다. 아주 섬세한 금세공 장신구나 동물의 이빨이나 뼈 식물줄기, 큰 조개로 만든 장신구로 남성의 용맹스러움을 표현한 것이 많다.

섬으로 이루어진 오세아니아 지역은 그 특성상 대부분의 장신구가 바다에서 얻은 소재로 이루어졌다. 특히 파푸아뉴기니의 원주민들은 중요행사 때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신을 장신구로 감쌌다. 다양한 조개껍질을 사용했지만 30cm가 넘는 거대한 것으로 만든 목걸이는 아주 극적인 모습을 연출한다.

중동지역에서는 오만의 장신구가 디자인이나 세공술에서 뛰어난 장인이 많았다. 여인의 신분과 집안의 부, 애정과 존경을 표현한 은과 금 장신구를 많이 제작했다. 예멘은 18세기에 유대인 세공사들이 많이 들어와 그 영향으로 빼어난 작품을 많이 남겼다.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이주하면서 그 도도한 맥은 많이 끊겼지만 은과 산호를 사용한 장신구는 보는 이 누구에게나 감동을 준다.

2만5000년 전 아시아에서 베링해협을 건너 아메리카대륙으로 이주한 인디오들은 올멕, 마야, 아즈텍, 잉카 등의 독특한 문녕을 이루고 살았다.
북중부의 멕시코와 코스타리카에서는 연옥을 조각해서 장신구를 만들었고 페루의 잉카인들은 많은 양의 금제품을 비롯해 은 구리 조개껍질로 만든 장신구를 남겼다.

스페인이 식민지화 한 뒤 약탈해간 금이 11톤, 은은 60톤을 넘었다. 아마존지역에 사는 인디언들은 동물의 뼈나 깃털을 써서 이색적인 장신구를 많이 만들었다. 그러나 남미 장신구 문화는 콜롬비아에 살고 있었던 여러 인디오 부족들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금 장신구가 압권이다. 이들은 금을 마치 종이를 다루듯 자유자재로 다스릴 줄 아는 금의 달인이었다. 콜롬비아가 수도 보고타에 세계에서 제일 큰 금 박물관을 가지고 있는 이유다. 특히 남미 인디오들은 금은 태양의 땀, 은은 달이 흘린 눈물로 믿어서 그들의 장신구에도 태양과 달의 기운을 불어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