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6.02 세계일보

삼청동 일대에만 10여개 박물관

[세계일보]


지난 1일에도 삼청동 골목에는 길을 거닐며 박물관을 둘러보는 연인 등 관람객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들의 모습에서는 결코 분주한 데서 느껴지는 번잡함은 없었다. 떠들썩하거나 요란하지도 않았다. 
문화적 향취를 찾아 나지막한 주택들을 사이에 두고 있는 박물관을 다소곳이 찾을 뿐이었다.

개관 1년이 채 안 된 부엉이박물관(www.owlmuseum.co.kr)을 초등학생인 아들딸과 함께 찾은 서은아씨도 그런 관람객 중 한 사람이었다. 감사원과 금융연수원 등 무거운 분위기가 풍기는 국가기관 옆에 부엉이박물관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작은 골목길에 들어서자마자 모습을 드러낸 이 한옥 박물관은 말 그대로 부엉이들의 천국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인 서씨 아들은 "부엉이들이 눈을 커다랗게 뜨고 여기저기서 노래하는 것 같아요"라며 마냥 신기하다는 표정이다. 초등학생들이 놀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옛날 이야기에서나 들었지 여태껏 한 번도 못 본 부엉이를 한군데서 2000마리나 보았으니 말이다. 작은 한옥집을 개조한 박물관 내부의 새소리며 그림들이 부엉이 나라의 독특함을 한껏 풍기고 있어 그 신기로움은 더했을 것이다.

정독도서관 옆에 있는 티베트박물관(www.tibetmuseum.co.kr)에서는 맑고 깨끗함으로 가득 찬 이국적인 분위기로 마음마저 정갈해졌다.
외국인의 거주가 금지된 나라로 여행객은 많으나 실제적인 민속은 베일에 가려졌던 티베트의 모습이 이곳에서 확인됐다. 
2층으로 이뤄진 박물관은 기껏 60평 남짓한 작은 공간임에도 다양한 느낌과 교훈을 주는 곳이다.
친구를 만나러 왔다가 이곳에 들렀다는 주부 장금주씨는"각종 옷가지와 도구들은 우리 조상들이 예전에 사용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며 "이곳에 오면 우리와 티베트 간의 문화적 차이를 느끼면서도 비슷한 점도 많이 발견한다"고 관람 소감을 밝혔다. 
그는 "티베트에서는 귀금속이 금이나 은이 아닌 옥과 부모의 뼈라고 하니 부모 공경의 풍습이 우리와 많이 닮았다"며 문화의 유사성에 대한 근거를 댄다. 개인이 소장한 자료를 일반에 공개하고 공유함으로써 국가가 하지 못하는 문화교육 현장을 확인케 하는 말이었다. 티베트박물관은 관장인 신영수씨의 땀으로 맺어진 곳이다. 
그는 20여년 동안의 해외 여행을 통해 수집한 각종 티베트 관련 물품을 전시해 놓았다. 신씨는 이곳 외에도 인사동에 있는 '재미있는 성문화박물관'을 운영하고 있으며, 티베트에서 모은 총포류를 바탕으로 총포박물관을 세울 채비도 하고 있다.

두 곳에 비하면 지난 5월 중순 개관한 인근의 장신구박물관(www.wjmuseum.com)은 개인박물관으로 보기에는 너무도 완벽했다. 공공박물관 부럽지 않은 내부 인테리어에 각종 소장 장신구만도 보물급들이었다. 
얼른 보기에도 여성들이 많이 찾을 성싶다. 그러나 생각과 달리 이곳을 찾는 이들은 학생이 더 많았다. 학과외 수업으로 학생들이 단체로 이곳을 찾고 있는 것이다. 
지난 주말에도 서울시 은평구 구산중학교 '국제이해반' 학생들이 찾았다. 3학년 박진영군은 "학생들의 자발적인 추천으로 장신구박물관을 비롯한 삼청동 일대의 박물관을 탐방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주택가에 박물관들이 자리를 잡고 있어 훨씬 정겨운 느낌이 든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전직 대사를 남편으로 둔 이강원 장신구박물관 관장은 "다른 일을 하다보면 동네 주민들이 민원도 많이 넣고 하지만, 이곳 주민들은 박물관을 세운다고 하니 환영 일색이었다"며 "문화적 이해 수준이 높은 주민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며 고마워했다.

이 일대에는 이 외에도 무속박물관, 가회박물관 등이 거리마다 제각기 다른 문화적 취향을 드러내며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문화 공간이 부족한 한국적 현실에서 이곳 관장들은 삼청동을 '박물관 거리'로 만들기 위해 조용한 모임을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여기고 있다. 보기 드문 문화 자산을 살려 문화 거리로 키워내려면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이렇게 의기투합하다 보면 자연스레 국가의 지원 문제가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공공기관이 담당하지 못하는 틈새 영역에서 일종의 문화적 봉사활동을 하는 이들 개인박물관에 보다 높은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맑은 날씨가 계속된 6월 초, 서울 도심의 한옥마을 삼청동은 먹거리와 볼거리가 넘쳐났던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이젠 마음의 풍요를 가져오는 개인박물관으로 새로운 문화적 지형도를 그려내고 있었다.

글 박종현, 사진 이종덕기자/bali@segye.com 2004.06.02